미국 은행들이 AI의 계좌 접속을 막기 시작했다…비밀번호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
10월 22~23일 미국 금융권에서 낯선 경고가 나왔다. 일부 고객이 개인용 AI 비서에게 인터넷뱅킹 계정 접근 권한을 넘기자, 은행들이 이를 확인하고 접속 제한에 나섰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AI는 질문에 답만 하는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를 대신해 사이트에 로그인하고 정보를 읽거나 행동까지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다.
이 소식은 “AI가 은행을 해킹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확인된 핵심은 고객이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AI 서비스에 입력했거나, AI가 사람의 브라우저를 통해 계정에 들어가도록 허용했다는 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계좌 주인이 승인했더라도 검증하지 않은 제3자 프로그램이 고객인 것처럼 접속한 셈이다. 고객의 위임과 은행의 허용이 충돌한 첫 사례에 가깝다.
로이터 보도와 CBS 뉴스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은 고객 계좌 안에서 승인되지 않은 제3자 AI 에이전트 활동을 감지하고 대응하고 있다. 다만 모든 은행에서 같은 일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AI가 대규모로 돈을 빼돌렸다는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AI가 금융 계정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과 권한으로 들어가야 안전하냐’다.
고객이 허락했는데 왜 은행은 막을까
보통 인터넷뱅킹 약관은 계정 정보와 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이나 서비스와 공유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고객이 편의를 위해 AI에 비밀번호를 줬더라도 은행이 그 AI를 신뢰할 의무는 없다. 은행은 로그인한 주체가 실제 고객인지, 고객의 기기에서 작동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인지, 공격자가 탈취한 도구인지 구분해야 한다.
이 구분이 어려운 이유는 AI 에이전트가 사람처럼 웹사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잔액을 읽고, 최근 지출을 정리하고, 상담창에 질문하거나, 경우에 따라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고객의 정상 행동과 비슷하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훨씬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고객이 AI에게 “지난달 구독료를 찾아 정리해 줘”라고 요청했다고 해 보자. 잔액과 거래 내역을 읽는 데서 끝나면 비교적 위험이 작다. 그러나 AI가 사용하지 않는 구독이라고 판단해 자동으로 해지 요청을 보내거나, 카드 분쟁을 접수하거나, 송금을 실행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이 의도한 범위를 넘어섰는지, AI가 잘못 판단했는지, 은행이 차단했어야 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CBS는 AI가 고객과 먼저 상의하지 않고 은행에 불만 전화를 건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전했다. 보도에 등장한 취재진은 이런 활동을 “계좌를 턴 사이버 공격”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AI가 대체로 사용자의 지시를 따랐지만 은행의 허가 없이 사람을 대리했다는 쪽에 가깝다. 과장된 ‘AI 반란’ 이야기보다 이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읽기 권한과 실행 권한은 전혀 다르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실용적인 구분은 ‘읽기’와 ‘쓰기’다. 읽기 권한은 잔액, 지출 내역, 카드 결제일 같은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쓰기 권한은 송금, 결제, 계좌 정보 변경, 이의 제기처럼 실제 상태를 바꾸는 행동을 뜻한다.
미 백악관의 AI·가상자산 책임자 데이비드 색스는 보도 뒤 소셜미디어에서 사용자 승인을 받은 에이전트와 악의적인 해커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은행이 에이전트 접속을 제한하려면 우선 읽기 전용 권한을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고객 자격증명을 이용한 완전한 실행 권한은 다른 수준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읽기 전용도 무해하지는 않다. 거래 내역에는 병원, 종교단체, 정치 후원, 위치, 생활 습관처럼 민감한 정보가 담긴다. AI 서비스가 이 정보를 어디에 저장하는지, 모델 개선에 사용하는지, 직원이나 외부 업체가 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돈이 이동하거나 계좌 설정이 바뀌는 권한과 비교하면 사고의 범위는 제한하기 쉽다.
실행 권한은 더 엄격해야 한다. 금액 한도, 허용된 수취인, 매번 사용자 재확인, 일정 시간 뒤 권한 만료, 행동 기록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AI가 알아서 해 줘”라는 한 문장만으로 모든 금융 행동을 허용하면 편리함보다 분쟁이 먼저 커질 수 있다.
은행들이 실제로 밝힌 입장
은행별 상황은 같지 않다. CBS에 따르면 체이스는 고객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누구에게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안전한 고객 승인 데이터 공유는 ‘오픈뱅킹’ 제공자를 통해 지원한다고 밝혔다. 오픈뱅킹은 비밀번호 자체를 넘기지 않고 사용자가 허용한 범위의 금융 정보만 제3자 서비스가 받을 수 있게 하는 표준화된 통로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는 10월 13일 실적 발표 전화회의에서 외부 에이전트를 아무 제한 없이 회사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고객과 은행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찰스 슈워브 경영진도 이달 초 승인되지 않은 에이전트를 차단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반대로 모건스탠리는 자사 플랫폼에서 승인되지 않은 AI 에이전트 활동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CBS에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스파고는 해당 보도의 논평 요청에 즉시 답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모든 은행이 AI를 전면 금지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확인된 것은 여러 금융기관이 위험을 인식하고 각자 탐지·차단·허용 방식을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은행은 자체 AI 비서를 제공하고 외부 AI는 막을 수 있다. 다른 은행은 검증된 파트너에게 읽기 전용 접속을 열 수 있다. 송금처럼 고위험 기능에는 사람의 추가 인증을 요구하면서 단순한 지출 분석은 허용하는 혼합형도 가능하다.
비밀번호를 AI에 주는 방식이 특히 위험한 이유
가장 피해야 할 방식은 은행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AI 서비스에 그대로 입력하는 것이다. 비밀번호는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나누지 못한다. 한 번 로그인하면 잔액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계정에 허용된 거의 모든 화면에 접근할 가능성이 생긴다.
또 비밀번호 방식은 권한을 회수하기 어렵다. 특정 AI만 끄고 싶어도 비밀번호 전체를 바꿔야 할 수 있다. 어떤 작업을 위해 언제 접속했는지 기록도 불분명해진다. AI 업체가 비밀번호를 직접 저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더라도, 브라우저 세션이나 로그인 토큰이 노출되면 비슷한 위험이 생길 수 있다.
더 나은 방식은 은행이 발급한 별도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최근 90일 거래 내역 읽기’만 허용하고, 송금은 금지하며, 30일 뒤 자동으로 권한이 끝나도록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수행한 행동에는 사람의 클릭과 구분되는 표시가 남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특정 AI의 권한만 즉시 끌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조는 신용카드의 가족카드나 회사 경비카드와 비슷하다. 다른 사람이 결제할 수 있지만 한도와 사용처를 제한하고 사용 기록을 따로 남긴다. AI도 ‘고객 그 자체’로 취급하기보다 제한된 대리인으로 다루는 편이 안전하다.
일반 사용자가 지금 확인할 것
현재 개인용 AI가 “재정 상태를 분석해 주겠다”며 은행 로그인을 요구한다면 먼저 해당 은행이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연결인지 확인해야 한다. 은행 앱이나 공식 웹사이트에서 승인 화면이 열리고, 어떤 정보에 접근하는지 목록이 표시되는 방식이 비교적 안전하다. 채팅창에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하라고 하면 이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미 계정 정보를 공유했다면 연결된 앱 목록과 로그인 기록을 확인하고, 낯선 접속이 있거나 서비스의 권한 회수 방법이 불분명하면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이 좋다. 다중 인증도 켜야 한다. 다만 다중 인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사용자가 AI에게 인증까지 대신 통과하도록 허용하면 보호 효과가 줄어든다.
AI가 만든 지출 분석은 참고자료로만 봐야 한다. 거래명을 잘못 이해하거나 가족의 공동 지출을 개인 소비로 오인할 수 있다. 대출 상환, 투자 매매, 세금 납부처럼 손실이 큰 행동은 최종 확인을 사람이 맡아야 한다. 특히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자동으로 자금을 옮겨라” 같은 넓은 지시는 예상하지 못한 거래를 만들 수 있다.
직장인과 소상공인에게는 회사 계좌와 개인 계좌를 구분하는 원칙도 중요하다. 직원이 개인 AI 도구에 회사 금융정보를 연결하면 조직의 승인 절차와 보안 규정을 우회할 수 있다. 경비 정리나 현금 흐름 예측에 AI를 쓰더라도 읽기 전용 계정, 승인된 서비스, 별도 테스트 데이터부터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금융 AI 경쟁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금융 AI는 카드 명세서를 분류하거나 소비 습관을 설명하는 기능이 중심이었다. 이제 개인 AI 비서가 일정, 이메일, 쇼핑, 은행을 한꺼번에 연결하면서 ‘조언’과 ‘행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사용자는 한 번 지시했을 뿐인데 AI는 여러 서비스에 들어가 연속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은행에는 새로운 선택이 생겼다. 외부 AI를 모두 막으면 고객이 원하는 편의 기능을 놓칠 수 있다. 반대로 무제한으로 허용하면 사기 탐지와 책임 체계가 흔들린다. 결국 경쟁력은 가장 많은 AI를 연결하는 데서 나오기보다, 권한을 얼마나 잘게 나누고 사고가 났을 때 경로를 설명할 수 있는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AI 업체도 “비밀번호를 보지 않는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읽었는지, 어떤 행동을 시도했는지, 언제 사람의 확인을 받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고객이 지시를 취소했는데 작업이 계속되는지, 은행이 차단했을 때 우회하지 않는지,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있는지도 검증 대상이다.
규제기관이 앞으로 다룰 문제도 구체적이다. 고객이 AI에 권한을 줬을 때의 법적 책임, AI가 만든 거래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 에이전트 신원 확인 기준, 기록 보존 의무가 필요하다. 사람 대신 일하는 AI가 늘수록 기존의 ‘본인 로그인’ 규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 정리
이번 사건은 AI가 은행 계좌를 해킹해 돈을 훔쳤다는 뉴스가 아니다. 일부 고객이 개인 AI에게 금융 계정 접근을 허용했고, 은행들은 검증되지 않은 자동화 프로그램이 고객처럼 행동하는 상황을 위험으로 판단해 막기 시작했다는 뉴스다.
일반 이용자가 기억할 원칙은 간단하다. 은행 비밀번호를 AI 채팅창에 주지 말고, 가능하면 공식 오픈뱅킹 연결과 읽기 전용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송금·결제·계정 변경에는 사람의 최종 승인을 남겨야 한다. 앞으로 확인할 변화는 은행들이 외부 AI에 어떤 공식 접속 통로를 열지, 그리고 읽기와 실행 권한을 얼마나 세밀하게 나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