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작가가 AI에 자기 일을 가르친다…시간당 12~200달러의 딜레마
할리우드의 작가·감독·프로듀서들이 생계를 위해 AI에게 자신의 일을 가르치는 단기 일자리를 맡고 있다. 8월 22일 가디언은 경력 있는 창작자들이 시간당 12~200달러를 받고 각본 작성, 촬영 일정 수립, 영상 속 화자 구분 같은 업무를 AI가 더 잘 수행하도록 평가하고 교정하는 현장을 보도했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를 “내 직업의 무덤을 파라고 삽을 건네받은 것”에 비유했다.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는 AI가 일자리를 바꾸는 과정이 단순한 ‘사람 대 기계’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감이 줄어든 전문가가 당장의 수입을 얻기 위해 자기 경험을 AI 학습에 제공하고, 그 AI가 나중에 같은 직무의 일부를 대신할 수 있다. 동시에 이 일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운 창작자도 있다. 기술을 거부하느냐 받아들이느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계와 협상력의 문제다.
어떤 일을 가르치고 있나
가디언 현장 보도에 나온 작업은 인터넷 문장을 단순히 분류하는 수준이 아니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 쌓은 판단을 잘게 나눠 AI의 답을 평가하는 전문 작업이다.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루스 파울러는 가상의 이틀 촬영 일정을 만들도록 AI를 훈련했다. 필요한 촬영 허가, 장소별 위험, 자연광 조건, 장면마다 필요한 인력, 아동 배우 보호 조건 등을 이메일과 촬영 대본, 제작 문서에서 찾아 일정으로 정리하게 하는 일이다. 영화·TV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제안 자료를 만드는 방법도 가르쳤다. 보통 제작 실무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처리하는 업무다.
익명을 요구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소음과 음악, 관중 목소리가 겹친 야구 경기 영상의 대사를 정확히 받아쓰도록 AI를 교정했다. 누가 말하는지 구분하기 위해 옷과 머리색 같은 외모를 설명하고 억양을 분류하는 작업도 했다. 이 과정에서는 인종이나 억양을 어떤 기준으로 이름 붙이는지가 편견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 다른 작가는 AI가 쓴 각본뿐 아니라 팟캐스트, 소설, 강의 원고를 평가했다. 결과가 자연스러운지, 인물의 감정과 맥락이 이어지는지, 전형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는지 지적한다. AI 회사는 완성된 작품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왜 이 답이 좋은지, 무엇이 틀렸는지’를 설명한 평가를 원한다. 이런 피드백이 모델의 다음 답변을 개선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왜 경력자가 이 일을 받아들이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할리우드의 일감 감소다. 가디언이 인용한 필름LA 자료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의 촬영일수는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48% 줄었다. 미국 노동통계국 수치로는 영화·음향녹음 산업 일자리가 코로나19 이후 회복의 정점이던 2022년 7월 45만 개에서 2026년 5월 32만6천 개로 28% 감소했다.
이 감소를 전부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코로나19의 후유증, 2023년 작가 파업, 스트리밍 회사의 투자 축소, 제작 지역 이동이 함께 작용했다. 바로 이 점이 창작자에게 더 어려운 선택을 만든다. AI가 미래 일감을 줄일지 불안하지만 현재의 일감 감소 원인은 이미 여러 개이고, 다음 작품 계약을 기다리는 동안 생활비가 필요하다.
파울러는 제작 일이 줄고 늘 돈이 부족해 AI 훈련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작가는 파업 뒤 의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일이 자신을 버티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양심의 불편함이 있어도 “통장에 돈이 있는 것”을 택했다는 말은 이 시장의 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개인에게 장기적인 직업 보호를 위해 당장의 유일한 수입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보수 범위는 시간당 12달러에서 200달러로 매우 넓었다. 전문성, 작업 난이도, 계약 회사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기사에 언급된 AI 훈련업체 마이크로1은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제작 전문가에게 예산 조정, 일정 변경, 업체·스태프 조율 같은 현실적인 평가 과제를 만들도록 요구하며 시간당 최대 85달러를 제시했다. 일부에게는 일반적인 데이터 분류보다 좋은 단기 수입이지만, 작품의 권리와 경력 안정성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AI가 창작자 전체를 곧바로 대체한다는 뜻인가
아직 그렇게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인터뷰에 응한 창작자들도 AI의 한계를 분명히 봤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많이 만드는 데는 능하지만 인물의 미묘한 감정과 장면의 축적,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작가는 정형화된 수사물 한 편의 구조는 따라 할 수 있어도 복잡한 인물과 독특한 분위기로 평가받는 작품을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오스카상을 받을 각본을 혼자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고용을 지켜준다는 뜻도 아니다. 제작사는 작품 전체가 아니라 업무를 여러 단계로 나눠 일부를 자동화할 수 있다. 초벌 아이디어, 자료 정리, 촬영표 초안, 영상 전사, 배경 화면, 특수효과 시안처럼 각각의 작은 일이 줄어들면 최종 결정은 사람이 하더라도 필요한 인원과 근무 시간이 감소할 수 있다.
반대로 제작비가 부족해 시작하지 못했던 창작자가 AI 도구로 영상을 만들 기회도 생긴다. 가디언은 AI로 만든 공상과학 단편으로 많은 조회수를 모은 젊은 제작자가 올해 장편 영화를 극장에 내놓을 예정인 사례를 소개했다. 기존 제작사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변화는 ‘창작 직업 소멸’ 하나가 아니라 대형 제작사의 인력 축소, 독립 제작자의 진입 확대, 새로운 검수 일자리의 등장으로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직장인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할리우드 사례가 특별해 보이지만 구조는 법률, 회계, 의료 행정, 고객 지원, 교육에도 적용된다. AI는 교과서에 없는 실무 판단을 배우기 위해 경력자의 평가가 필요하다. 회사는 전문가에게 실제와 비슷한 과제를 만들고, AI 답변의 오류를 표시하고, 더 나은 처리 순서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처음에는 ‘AI를 잘 쓰는 전문가’라는 새 일자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단순 반복 업무를 줄이고 자신의 지식을 더 넓게 활용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이 끝난 뒤 회사가 그 지식으로 만든 도구를 계속 사용한다면 전문가는 일회성 보수만 받고 장기 가치에서는 배제될 수 있다. 누가 학습 자료와 개선된 모델의 이익을 갖는지가 핵심이다.
직장인이 사내 AI 도입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비슷한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평가 자료가 어느 모델에 사용되는가, 회사 안에서만 쓰이는가, 외부 고객에게 판매되는가, 내 이름과 작업물이 제거되는가, 오류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AI 교육에 참여했다”는 경력 한 줄보다 계약 범위가 더 중요하다.
기업 역시 전문가의 판단을 싸게 한 번 사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업무 규칙은 바뀌고 예외 상황이 생긴다. 촬영 허가와 아동 보호 조건처럼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지식은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경험 많은 사람을 조직에서 내보낸 뒤 AI만 남기면, 모델이 틀렸을 때 이를 알아볼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
창작자 보상에서 따져야 할 것
현재 공개된 보수는 시간당 임금 중심이다. 하지만 AI 훈련의 가치는 작업 시간만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전문가는 수년간 실패와 협업을 겪으며 얻은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그 기준이 수백만 번 재사용될 수 있다면 일반 단기 아르바이트와 같은 계약이 공정한지 논쟁이 생긴다.
가능한 보상 방식은 여러 가지다. 높은 시간당 보수, 프로젝트 완료 보너스, 모델이나 상용 제품이 사용될 때의 추가 보상, 노동조합을 통한 표준 계약, 작업물의 사용 기간 제한 등이 있다. 어떤 방식이 현실화될지는 계약 당사자와 업계 규칙에 달려 있다. 이번 보도는 통일된 보상 기준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작권 문제와 노동 문제도 구분해야 한다. 기존 각본이나 영상을 허락 없이 학습에 썼는지는 저작권 분쟁이다. 반면 전문가가 돈을 받고 AI의 답을 평가했다면 계약과 노동 조건, 지식 사용 범위가 중심이 된다. 동의하고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이 공정하다고 볼 수 없고, 반대로 AI 훈련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자가 저작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없다.
개인의 이름과 명성이 사용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상 경력 작가가 가르친 AI”라는 홍보와 익명으로 일반 평가를 제공하는 일은 다르다. 창작자의 이름, 목소리, 얼굴, 대표작과 비슷한 스타일을 제품 마케팅에 사용하려면 별도의 동의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편견과 품질 문제도 남는다
영상 속 화자를 구분하며 외모와 억양을 설명한 사례는 학습 데이터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어떤 억양’이라고 붙인 이름이 부정확하거나 고정관념을 담으면 AI도 그 분류를 반복할 수 있다. 여러 배경의 전문가가 기준을 검토하고, 민감한 특성을 꼭 분류해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창작 평가에는 정답이 하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특정 장르와 제작 관행에 익숙한 평가자만 모으면 AI는 그 취향을 ‘좋은 작품의 규칙’으로 배울 수 있다. 새로운 형식과 소수 문화의 표현을 오류로 취급할 위험이 있다. 평가자의 경력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다양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또한 AI가 만든 결과물의 품질이 좋아져도 출처와 책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촬영 일정이 아동 보호 시간을 빠뜨리거나 위험한 장소 조건을 잘못 판단하면 실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제작 결정에서는 AI가 초안을 만들더라도 책임 있는 사람이 근거 자료와 최신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보도에서 확인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
확인된 사실은 경력 창작자들이 전문 AI 훈련업체를 통해 실제 작업과 닮은 과제를 만들고 평가하고 있으며, 기사에서 확인된 보수 범위가 시간당 12~200달러라는 점이다. 마이크로1, 머코, 핸드셰이크 같은 업체가 언급됐고, 일부 훈련업체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대형 AI 회사와 계약 관계가 있다고 보도됐다.
그러나 다음은 공개되지 않았다.
- 각 AI 회사가 어떤 창작 평가 자료를 어느 모델에 사용했는지
- 참여한 할리우드 종사자의 전체 수와 평균 소득
- 훈련 자료가 실제 제작 일자리 감소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 창작자의 작업물이 얼마나 오래 보관되고 재사용되는지
- 시간당 보수 외에 추가 권리나 보상이 있는지
- AI 사용으로 새로 생긴 제작 일자리와 사라진 일자리의 정확한 규모
영화·음향 산업 일자리 28% 감소도 AI만의 효과가 아니다. 기사 자체가 팬데믹, 파업, 스트리밍 투자 축소를 함께 짚는다. AI가 일부 배우, 편집, 특수효과 업무에 들어오고 있지만 전체 감소분을 AI 대체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이번 변화가 중요한 이유
할리우드 사례가 남기는 가장 구체적인 질문은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보다 ‘내가 AI에게 일을 가르칠 때 무엇을 받고 어떤 권리를 남길까’다. 전문가의 참여 없이는 현실 업무를 이해하는 AI를 만들기 어렵다. 그 전문성이 일회성 단기 노동으로만 가격이 매겨진다면 생산성 향상의 이익은 AI 회사와 제작사에 집중되고, 지식을 제공한 사람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
앞으로 볼 변화는 세 가지다. 창작자 노조와 제작사가 AI 훈련 노동을 기존 단체협약에 포함하는지, 훈련업체가 자료 사용 범위와 보상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AI를 쓴 작품의 제작 인원·업무시간·크레디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다.
당장 분명한 사실은 AI가 완성된 영화 한 편을 사람 없이 만드는 단계에 도달했느냐가 아니다. 이미 사람의 경력을 작은 평가 작업으로 바꾸고, 그 대가를 시간당 임금으로 지급하는 노동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창작자가 기술 변화의 교사이면서 잠재적 경쟁자가 되는 이 이중 역할을 어떻게 보상할지가 다음 논쟁의 중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