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등 AI 협력국에 ‘미·중 한쪽 선택’ 요구 검토…무엇이 달라지나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수십 개 협력국에 미국과 중국의 AI 협력 체계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로이터가 8월 14일 보도했다. 로이터가 확인한 미국 국무부의 내부 서한 초안은 미국이 이끄는 ‘팍스 실리카’와 충돌하는 중국 주도 체계에 동시에 참여하면 미국 연합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직 확정된 외교 조치는 아니다. 초안에는 날짜가 없고 언제 발송될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발송 전에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 미국 국무부는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내부 문서에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국이 당장 미국이나 중국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식으로 단정하면 과장이다.
그럼에도 이 보도는 AI 경쟁이 더 좋은 챗봇을 만드는 기업 간 대결을 넘어 광물·반도체·데이터센터·모델을 묶은 국가 연합 경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팍스 실리카에 참여한 동맹국이면서 중국과 큰 무역 관계를 가진 반도체·배터리 산업국이다. 실제 서한이 전달되고 배타적 조건이 생기면 정부 외교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처, 공급망, AI 모델 선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팍스 실리카’는 AI판 군사동맹이 아니다
팍스 실리카는 미국이 2025년 시작한 비구속적 협력 체계다. 이름의 ‘실리카’는 반도체와 첨단 산업을 떠받치는 실리콘을 떠올리게 한다. 목표는 AI 모델을 훈련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핵심광물, 전력과 데이터센터 투자, 모델 생태계를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끼리 연결하는 것이다.
현재 약 20여 개 국가가 참여한 것으로 로이터는 전했다. 한국, 일본, 호주 같은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핵심광물 공급국이 될 수 있는 카자흐스탄도 포함된다. 참여국은 AI 관련 공동 투자 기회를 공유하고, 수출통제와 공급망 정책을 맞추며,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력한다.
군사동맹처럼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다른 나라가 자동으로 개입하는 조약은 아니다.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구체적인 의무도 사업과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장비, 고성능 AI 칩, 희토류와 같은 자원의 접근 조건이 연결되면 기업에는 매우 실질적인 영향이 생긴다. 참여 선언이 상징에 그치지 않고 투자와 수출 허가의 전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가 6월 마련한 ‘AI 기회 성명’에는 팍스 실리카 회원과 미국식 AI 협력에 뜻을 보인 나라 등 35개국이 서명했다. 보도된 서한 초안은 이들 국가를 대상으로 작성됐다. 초안은 팍스 실리카 가입이 단순한 회비형 회원권이 아니라 약속이며, 기대가 충돌하는 중복 체계와 함께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어떤 체계를 내놓았나
중국은 2026년 7월 ‘세계 인공지능 협력기구’를 출범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개방형 가중치 AI 기술을 내세워 미국 중심 생태계의 대안을 제시했다. 개방형 가중치란 모델이 학습한 핵심 수치 정보를 공개해 다른 나라와 기업이 자체 환경에서 모델을 수정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미국 주요 회사의 최상위 모델은 대체로 회사 서버를 통해 이용하는 폐쇄형 서비스다. 반면 중국의 여러 모델은 내려받아 운영하거나 비교적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AI 서비스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미국 회사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으려는 국가와 기업에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기술과 무역을 정치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로이터에 이런 행동이 세계 AI 발전을 막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의 관점에서는 미국이 반도체와 광물 접근권을 이용해 경쟁국을 배제하려는 조치로 보일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중국의 체계가 단순한 기술 교류가 아니라 중국식 AI 표준과 영향력을 확장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AI 모델은 정보 검색, 군사 분석, 사이버 보안, 산업 자동화에 폭넓게 쓰인다. 어느 나라의 모델과 반도체 공급망을 선택하느냐가 데이터 규칙과 안보 정책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왜 지금 ‘양쪽 가입’을 문제 삼나
직접적인 계기는 카자흐스탄이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의 팍스 실리카에 참여하면서 중요한 핵심광물 매장량을 협력 자산으로 평가받았다. 동시에 중국 주도의 AI 협력기구에도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두 체계에 모두 참여한 나라로 확인된 사례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런 중복 가입이 팍스 실리카의 의미를 약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커졌다. 공동 투자와 공급망 정보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경쟁 체계에도 들어가면 기술과 자원이 중국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논리다. 로이터가 인용한 미국 당국자는 한 국가가 미국 생태계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하면서 중국이 만든 경쟁 구상에도 참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서한 초안에는 중국을 직접 지목하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표현이 담겼다. “모든 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무것의 일부도 아닌 것”이라는 문장도 포함됐다. 외교 문서로는 이례적으로 선택 압박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가입 체계가 실제로 얼마나 충돌하는지는 세부 규칙을 봐야 한다. 두 조직 모두 아직 발전 중이고, 비구속적 선언과 실제 사업 계약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후·보건처럼 공동 이익이 있는 AI 분야에서도 협력을 끊어야 하는지, 대학 연구와 민간 오픈소스 사용까지 제한할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쪽 선택’이 어느 범위까지 적용되는지가 핵심이다.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AI 공급망은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칩 생산에 필요한 광물과 소재가 있고, 이를 가공해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과 장비가 있다. 완성된 AI 칩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설치되며, 막대한 전력과 냉각 설비가 필요하다. 그 위에서 모델을 훈련하고, 마지막으로 기업과 소비자가 서비스를 사용한다.
어느 한 단계라도 막히면 전체 AI 생태계가 흔들린다. 중국은 희토류 등 일부 핵심광물에서 강한 지위를 갖고 있고, 미국은 고성능 AI 칩 설계와 최상위 상용 모델에서 우위를 보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 역량, 배터리·소재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호주는 광물 공급에서 역할이 크다.
팍스 실리카는 이 여러 단계를 미국과 파트너 국가 안에서 안정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중국의 보복이나 수출 제한이 생겨도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공동 투자로 데이터센터와 제조 시설을 늘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참여국 선택 문제는 특정 챗봇을 쓰느냐보다 훨씬 넓다. 공장 위치, 장기 구매 계약, 수출 허가, 연구 협력까지 연결될 수 있다.
한국에는 왜 민감한 소식인가
한국은 팍스 실리카 참여국으로 로이터 보도에 명시됐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의 큰 수출 시장이며 전자·화학·배터리 기업의 생산과 판매가 깊게 얽혀 있다. 미국의 기술 안보 요구를 따르면서 중국 사업을 완전히 끊지 않는 균형이 이미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미국이 두 AI 체계의 중복 참여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면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미국 쪽에 설 가능성이 크다. 한미 동맹과 고성능 반도체 기술 협력, 미국 시장 투자를 고려하면 팍스 실리카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중국과 모든 AI 협력을 중단한다는 뜻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업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회원국의 의무가 회사 계약에 어떻게 내려오는가’다. 예를 들어 중국 AI 모델을 내부 업무에 사용하는 것까지 제한하는지, 중국 대학과의 공동 연구가 대상인지, 중국 내 공장의 장비와 데이터 처리가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파급력이 전혀 다르다. 국가가 한 체계를 선택해도 민간의 일반 상용 서비스 사용까지 자동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기회와 위험이 함께 있다. 미국 주도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공동 투자와 장기 수요를 확보할 수 있지만, 대중국 수출 제한이 확대되면 기존 고객과 생산 거점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독립적인 AI 공급망을 만들수록 기업은 설비, 제품 사양, 규정 준수 체계를 두 벌로 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일반 사용자의 AI 서비스도 달라질 수 있다
당장 한국에서 챗GPT나 중국 AI 앱이 차단된다는 보도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별 AI 생태계가 갈라지면 소비자에게도 차이가 쌓인다. 미국 연합 국가는 미국산 모델과 클라우드, 칩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중국 연합 국가는 중국산 개방형 모델과 현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같은 번역·검색·업무 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모델, 개인정보 저장 위치, 답변 제한, 구독 가격이 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앱 회사는 두 시장을 위해 서로 다른 AI 기능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애플이 중국용 AI 모델을 따로 준비하는 것으로 보도된 것도 이런 지역 분리의 한 사례다.
개방형 모델을 둘러싼 선택도 정치화될 수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와 스타트업은 성능과 비용을 보고 미국·중국 모델을 함께 비교한다. 공급망 연합의 조건이 모델 사용까지 넓어지면 기술적으로 가장 적합한 도구보다 어느 국가 생태계에 속했는지가 먼저 고려될 수 있다. 이는 비용을 높이고 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반대로 신뢰 기준이 분명해지는 장점도 있다. 모델이 어디에서 개발됐고 어떤 데이터 규칙을 따르는지, 핵심 인프라가 특정 국가의 압박에 노출되는지를 정부와 기업이 더 엄격하게 살필 수 있다. 의료·국방·공공행정처럼 민감한 분야에서는 값이 싸고 성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출처가 불분명한 모델을 쓰기 어렵다.
핵심광물이 AI 외교의 중심이 된 이유
AI 뉴스를 보면 모델과 칩 이름이 주로 등장하지만, 실제 경쟁은 광산에서 시작된다. 반도체와 전력 설비에는 다양한 희소 금속이 필요하고, 채굴한 광물을 정제·가공하는 시설도 중요하다. 중국은 일부 핵심광물의 생산과 정제에서 사실상 지배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이 무역 갈등에서 광물 우위를 보복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은 국내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카자흐스탄, 호주 등 파트너 국가의 공급원을 확보하려 한다. 카자흐스탄의 양쪽 가입에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도 AI 모델의 철학보다 실제 광물 접근권과 관련이 깊다.
한국 기업에는 원료 조달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투자 혜택이나 공급 계약을 받는 대신 중국산 소재 비중을 줄이라는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광산과 정제 시설은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정치적 선언과 실제 공급 안정 사이에는 시차가 크다.
미국의 요구에도 한계와 역효과가 있다
협력국에 한쪽 선택을 요구하면 미국 생태계의 결속을 높일 수 있다. 민감한 기술과 투자 정보를 더 안심하고 공유하고, 중국이 양쪽 체계의 혜택을 동시에 얻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미국 기업의 모델과 칩을 공동 표준으로 확산하는 데도 유리하다.
하지만 중간 국가들은 미국과 안보 협력을 하면서 중국과 무역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 압박이 너무 강하면 이들이 공식 가입을 피하거나, 미국이 아닌 자체 지역 협력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저렴하고 수정 가능한 중국 개방형 모델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에는 미국의 폐쇄형 상용 서비스만으로 대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세계 AI 연구가 두 진영으로 갈라지면 안전 문제 대응도 어려워진다. 사이버 공격, 생물학 위험, 허위정보처럼 국경을 넘는 문제는 경쟁국 사이의 최소한의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모든 협력을 충성도 시험으로 바꾸면 사고 보고와 공동 표준 논의가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이 동맹에 요구하는 만큼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하는지도 중요하다. 안정적인 칩 공급, 합리적인 모델 가격, 데이터센터 투자, 인력 교육이 뒤따르지 않으면 참여국은 선언만 하고 실제로는 중국 기술을 계속 사용할 유인이 생긴다. 연합의 지속성은 압박보다 구체적인 혜택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보도에서 확인된 사실과 아직 모르는 것
현재 확인된 사실은 국무부 내부 서한 초안이 존재하고, 로이터가 미국 당국자와 문서를 통해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초안은 35개 AI 기회 성명 서명국에 선택을 요구하는 방향이며, 팍스 실리카와 충돌하는 중복 가입을 문제로 본다. 한국은 팍스 실리카 참여국 가운데 하나다.
아직 모르는 내용은 더 많다.
- 서한이 실제로 발송될지, 발송 시점은 언제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 최종 문구가 초안과 같을지 알 수 없다.
- ‘충돌하는 중국 체계’의 범위와 탈퇴 기한이 제시되지 않았다.
- 불응할 경우 연합 제외 외에 칩·투자·수출 허가상 어떤 불이익이 생기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 민간 기업의 중국 모델 사용과 대학 연구 협력까지 적용되는지 불분명하다.
- 한국 정부가 별도의 요구를 받았는지, 어떤 입장을 낼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이 오늘 당장 중국 사업을 정리하거나 AI 도구를 바꿀 단계는 아니다. 다만 공급망과 데이터 정책을 미국·중국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의존했을 때의 위험을 점검할 이유는 충분하다.
앞으로 볼 변화
첫 번째 관전 지점은 미국 국무부가 서한을 공식 발송하는지다. 발송된다면 ‘중복 가입’의 정의와 불응 시 조치가 핵심이다. 두 번째는 카자흐스탄의 대응이다. 양쪽 참여를 유지하는지, 한 체계를 선택하는지가 다른 중간 국가의 선례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국 정부가 팍스 실리카의 의무 범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다.
일반 독자가 기억할 핵심은 AI 경쟁의 무대가 이미 앱 화면 밖으로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챗봇의 답변 품질은 광물, 반도체, 전력, 외교 협정 위에서 만들어진다. 미국의 선택 요구가 최종 정책이 되면 AI 서비스의 가격과 이용 가능성도 정치적 공급망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다.
이번 보도를 ‘미국이 중국 AI를 전면 금지했다’고 읽는 것은 틀리다. 현재는 내부 초안 단계다. 그러나 동맹국이 양쪽 AI 생태계에 동시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시대가 끝날 수 있다는 신호는 분명하다. 한국에는 외교 뉴스이면서 동시에 반도체 산업, 기업용 AI, 소비자 서비스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경제 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