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소법원도 AI 학습의 ‘공정 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저작권 분쟁이 달라지는 이유
미국 제3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26년 9월 29일 톰슨로이터와 옛 법률 검색업체 로스 인텔리전스의 저작권 분쟁에서 톰슨로이터 측에 유리한 하급심 판단을 유지했다. 로스가 톰슨로이터의 법률 정보 서비스 웨스트로(Westlaw)에 실린 ‘헤드노트’를 AI 기반 법률 검색엔진 개발에 사용한 것은 공정 이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AI 학습 저작권 사건을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판단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다만 제목만 보고 “미국 법원이 모든 생성형 AI 학습은 불법이라고 확정했다”고 이해하면 틀리다. 이 사건은 챗GPT처럼 새 문장이나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형 AI가 아니라, 판례를 찾아 주는 경쟁 법률 검색엔진을 둘러싼 분쟁이다. 항소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도 현재 봉인돼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판결의 방향은 중요하지만 다른 AI 소송에 그대로 적용될 범위는 공개된 의견서를 확인한 뒤 판단해야 한다.
이 소식을 검색하는 사람이 알고 싶은 질문은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의 저작물을 AI 학습에 쓰면 이제 모두 저작권 침해가 되는가?”다. 현재 답은 ‘아니다’다. 미국의 공정 이용 판단은 사용 목적, 원저작물의 성격, 사용한 양, 원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사건별로 따진다. 이번 사건에서는 경쟁 제품을 더 쉽게 만들기 위해 유료 법률 데이터베이스의 편집물을 이용했다는 점이 로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다른 종류의 모델과 데이터는 별도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웨스트로의 ‘헤드노트’는 무엇인가
미국 판결문 자체는 정부가 만든 공공 기록이어서 누구나 읽고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판결에서 핵심 법리를 찾아 분류하고 짧게 요약하는 작업에는 편집자의 판단과 노력이 들어간다. 톰슨로이터의 웨스트로는 판례마다 중요한 법률 쟁점을 압축한 헤드노트와 분류 체계를 제공하며, 법률가들은 이를 이용해 필요한 판례를 빠르게 찾는다.
예를 들어 긴 판결문에 계약 해석, 손해배상, 증거 채택 같은 쟁점이 함께 들어 있다면 편집자가 각 부분의 핵심을 짧게 요약하고 주제 번호를 붙인다. 판결문 원문과 달리 그 요약의 표현과 선택에는 사람이 만든 요소가 들어갈 수 있다. 톰슨로이터는 로스가 이런 헤드노트 수천 건을 무단으로 이용해 경쟁 검색엔진을 훈련했다고 주장했다.
로스의 서비스는 사용자가 자연어로 법률 질문을 입력하면 관련 판례를 찾아 주는 검색 도구였다. 로스 측은 헤드노트를 최종 결과로 그대로 판매하려는 것이 아니라 검색 기능을 개발하는 데 사용했으므로 공정 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델라웨어 연방법원은 로스가 경쟁 법률 검색 도구를 쉽게 개발하기 위해 헤드노트를 가져갔고, 그 사용이 충분히 변형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은 “로스가 경쟁 법률 연구 도구를 더 쉽게 만들기 위해 헤드노트를 가져갔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항소법원은 로스의 공정 이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결론을 유지했다. 구체적인 항소심 논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공개된 결과만 보면 경쟁 서비스 개발이라는 목적과 기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한 요소였다고 볼 수 있다.
공정 이용은 ‘AI면 자동 허용’이라는 규칙이 아니다
미국 저작권법의 공정 이용은 허락 없이 저작물을 썼다고 해서 언제나 침해로 보지 않고, 비평·교육·연구·보도·새로운 표현 같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이용을 허용하는 장치다. 법원은 보통 네 요소를 함께 본다. 이용의 목적과 성격, 원저작물의 성격, 가져간 양과 중요성, 원저작물의 현재 또는 잠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AI 기업들은 학습 과정이 수많은 자료에서 통계적 패턴을 익혀 새로운 기능을 만든다는 점에서 변형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저작권자는 자신의 글, 그림, 음악, 사진이 허락과 보상 없이 복제됐고, 그 결과물이 다시 원작과 경쟁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같은 ‘AI 학습’이라도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얻었는지, 결과물이 원작을 재현하는지, 원작 시장을 대체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로스와 톰슨로이터가 법률 검색이라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했다는 사실이다. 학습 결과가 완전히 다른 산업의 분석 도구가 아니라 기존 웨스트로의 핵심 기능과 가까운 서비스를 만드는 데 쓰였다. 시장 대체 가능성이 공정 이용 판단에서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또한 원자료가 단순한 판결문 원문이 아니라 톰슨로이터가 편집한 헤드노트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누구나 공개 판결을 모아 독자적인 검색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과, 경쟁사의 유료 편집물을 가져가 모델 개발 시간을 줄여도 된다는 주장은 같지 않다. 독자가 이번 판결을 이해할 때 ‘공개 법률 정보’와 ‘민간 회사가 만든 요약·분류’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다.
생성형 AI 소송과는 무엇이 다른가
현재 작가, 언론사, 음악회사, 사진 제공업체 등은 여러 AI 기업을 상대로 학습 데이터 사용에 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건들과 로스 사건의 공통점은 저작권 자료를 모델 개발에 사용했고, 피고가 공정 이용을 핵심 방어 논리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항소심 결과가 다른 사건에서도 자주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차이도 분명하다. 로스의 시스템은 사용자의 질문과 관련된 판례를 찾는 검색엔진이었고, 문제가 된 자료는 특정 상업 데이터베이스의 헤드노트였다. 대규모 언어모델은 소설, 기사, 웹페이지 등 훨씬 다양한 자료에서 언어 패턴을 익히고 여러 종류의 결과를 만든다. 학습 자료를 최종 출력에서 얼마나 재현하는지와 원작 시장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모델마다 다르다.
또한 항소법원의 이유가 봉인돼 있다는 사실은 해석의 범위를 제한한다. 판결 결과만으로 법원이 네 요소를 어떤 순서와 강도로 적용했는지 알 수 없다. 봉인이 해제된 의견서에서 저작물성, 변형성, 시장 피해, 증거 범위 중 무엇을 강조했는지에 따라 다른 소송에서의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AI 학습은 공정 이용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문장보다 “경쟁 법률 검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상업 데이터베이스의 편집 헤드노트를 사용한 사건에서 공정 이용 주장이 항소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 한 문장의 차이가 과장과 사실 보도를 가른다.
언론사와 콘텐츠 기업에 왜 중요한가
언론사와 데이터 제공업체는 기사나 자료가 AI 학습에 사용되면서 구독 시장과 라이선스 시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판결은 원저작물의 기존 시장뿐 아니라 합법적인 데이터 사용 허가 시장이 침해됐는지를 법원이 중요하게 볼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특히 AI 제품이 원저작물 제공자의 유료 서비스와 직접 경쟁한다면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데이터 제공업체가 자동으로 승소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표현과 보호받지 않는 사실을 구분해야 하고, 실제로 무엇이 복제됐는지 입증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에 많은 비용을 들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의 모든 정보가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니다. 헤드노트처럼 사람이 선택하고 표현한 편집물인지, 단순 사실 목록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콘텐츠 기업들은 소송만이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AI 기업이 기사, 책, 사진, 음악을 안정적으로 쓰려면 출처와 사용 범위, 보상 조건을 합의하는 편이 장기간 소송보다 예측 가능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큰 기업만 계약 기회를 얻고 개인 창작자는 협상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문제도 남는다.
AI 기업과 스타트업에 생기는 현실적인 변화
큰 AI 기업은 법률 비용과 데이터 계약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작은 스타트업은 그렇지 못하다. 로스는 2021년 톰슨로이터 소송 비용을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제품의 기술적 가능성과 별개로 데이터의 권리 관계가 회사 생존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례다.
스타트업은 “웹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 출처, 이용약관, 라이선스, 저작권 상태, 삭제 요청 처리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특히 경쟁사의 유료 데이터베이스나 사람이 만든 요약을 사용해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경우에는 위험이 높다.
기업 고객도 공급업체에 데이터 출처를 물어야 한다. AI 서비스가 저렴하고 성능이 좋아도 학습 데이터와 출력물의 권리가 불분명하면 나중에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계약서에는 데이터 사용 책임, 침해 주장 발생 시 대응, 모델과 자료의 교체 가능성, 고객이 만든 콘텐츠의 학습 사용 여부가 포함돼야 한다.
개발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공개 자료, 자체 제작 자료, 명확한 허가를 받은 자료를 우선하고, 특정 유료 서비스의 표현을 그대로 대량으로 가져오는 방식을 피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의 양만 늘리는 경쟁에서 출처가 명확한 데이터와 사람의 검수를 결합하는 경쟁으로 일부 무게가 이동할 수 있다.
일반 사용자는 무엇을 알아야 하나
이 판결 때문에 오늘 사용하는 챗봇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사용자가 AI 답변을 읽었다는 이유로 저작권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분쟁의 중심은 모델을 만든 회사가 어떤 자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다. 일반 사용자는 다만 AI가 만들어 준 글과 이미지가 저작권 문제에서 자동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회사 보고서, 광고, 출판물처럼 외부 공개와 상업 이용이 예정된 결과물은 출처를 확인하고 사람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AI가 특정 기사나 책의 문장을 길게 재현하거나 특정 작가의 작품을 거의 그대로 흉내 낸다면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출처 표시만 하면 모든 복제가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법률 정보의 경우에는 더 신중해야 한다. AI가 판례를 요약해 줘도 실제 판결문과 현재 효력을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법률 검색 서비스의 데이터 권리를 다룬 것이지 AI가 제공하는 법률 조언의 정확성을 보증한 판결이 아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한 것과 확정하지 않은 것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제3연방순회항소법원이 로스의 공정 이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톰슨로이터에 유리한 하급심 판단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AI 학습 저작권 분쟁을 다룬 미국 최초의 연방 항소심 판단이라는 점도 보도를 통해 확인된다. 문제가 된 자료는 웨스트로의 헤드노트이고, 로스는 이를 법률 검색엔진 개발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직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 판결이 모든 생성형 AI 학습에 적용되는 일반 규칙인지 여부다. 항소심의 이유가 공개되지 않았고, 생성형 AI 사건은 자료와 제품, 시장 영향이 다르다. 다른 연방 항소법원이 별도 사건에서 다른 분석을 내놓을 수도 있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기준을 정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독자에게도 미국 판결을 한국 법에 그대로 옮겨 적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저작권법의 예외 규정과 데이터 분석 관련 조항, 계약 구조는 미국의 공정 이용 법리와 다르다. 다만 해외 AI 서비스와 콘텐츠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 판례라는 점에서 국내 기업과 창작자도 흐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볼 변화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봉인된 항소심 의견이 언제, 어느 범위까지 공개되는지다. 법원이 변형성과 시장 피해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드러나야 다른 AI 소송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로스 측이 추가 심리나 연방대법원 판단을 요청하는지도 관전 지점이다.
두 번째는 다른 생성형 AI 저작권 사건의 항소심 결과다. 서로 다른 법원이 학습 목적, 데이터 취득 방식, 출력의 유사성, 라이선스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비교해야 미국 전체의 기준이 보인다. 세 번째는 AI 기업과 언론사·출판사·음악회사 사이의 라이선스 계약이 늘어나는지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법원이 ‘AI’라는 이름 자체를 심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쟁 서비스가 타사의 편집 저작물을 어떤 목적으로 가져갔고 그 이용이 원래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AI 학습에 공정 이용이라는 면허가 자동으로 붙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지만, 모든 학습이 불법이라는 결론까지 내린 것은 아니다.
핵심 출처: 로이터 보도 재게시본, CNBC-TV18의 로이터 보도, PYMNTS 사건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