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AI가 의료비를 9억4200만달러 늘렸다는 분석…환자에게 어떤 뜻인가
병원이 진료 기록과 보험 청구서를 작성할 때 쓰는 인공지능이 미국 의료비를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늘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블루크로스 블루실드 협회(BCBSA)는 2026년 9월 24일, 병원의 AI 기반 기록·청구 도구 확산과 함께 회원 보험사들이 2년 동안 추가로 부담한 비용이 9억4200만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AI가 의사의 시간을 줄이고 행정 효율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더 많은 질환이 기록되고 더 비싼 등급으로 청구되는 효과가 먼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AI가 쓸데없는 진료를 9억4200만달러어치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환자가 실제로 더 아팠을 수도 있고, 과거에 빠졌던 질환이 AI 덕분에 정확히 기록됐을 수도 있다. 핵심은 AI가 진료실의 메모를 정리하는 행정 도구에 그치지 않고, 병원에 지급되는 돈의 규모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에게는 보험료와 본인 부담금, 진료 승인 절차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AI가 의료비를 어떻게 올리나
미국 병원은 환자의 주된 질환뿐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부수 질환’도 보험 청구서에 기록한다. 예를 들어 수술 환자에게 장폐색, 산·염기 불균형, 영양 문제 같은 추가 상태가 있으면 치료가 더 복잡했다고 판단돼 병원이 받는 금액이 커질 수 있다. 문제는 의사가 바쁜 진료 중 모든 상태를 세세하게 문서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AI가 들어왔다. 진료실 대화를 듣고 자동으로 기록 초안을 만드는 ‘AI 기록 도우미’, 환자 차트를 훑어 빠진 진단 코드를 찾아주는 프로그램, 보험 청구 전에 더 높은 복잡도에 해당하는 항목을 추천하는 도구가 확산됐다. 이런 시스템은 놓친 질환을 찾아 의료 기록을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동시에 병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을 적극적으로 포착하는 역할도 한다.
BCBSA 분석에 따르면 2024년과 2025년 병원들이 부수 질환을 더 자주 청구하면서 블루크로스 계열 보험사의 비용이 6억5300만달러 늘었다. 전반적으로 더 높은 치료 복잡도가 청구된 효과까지 합치면 2023년과 비교한 2년간 추가 비용은 9억4200만달러였다. 분석은 병원과 의료 시설의 입원 청구 데이터를 대상으로 했다. BCBSA는 31개 독립 보험사를 대표하며 1억명 이상에게 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9억4200만달러 숫자를 읽는 법
이 수치는 규모가 크지만 인과관계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AI 도구 사용이 늘어난 시기와 청구 복잡도가 높아진 시기가 겹친다는 분석이지, 모든 추가 청구가 AI 때문에 생겼거나 부당하다는 최종 판정은 아니다. BCBSA도 질환 코드 증가가 곧바로 부적절한 AI 사용을 뜻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환자들이 실제로 더 심각한 상태였다면 높은 청구는 정당할 수 있다. 고령 환자 증가, 감염병 이후 건강 악화, 병원이 치료하는 환자 구성 변화 같은 요인도 비용에 영향을 준다. 반대로 환자가 더 아프다고 기록됐는데 실제 치료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보험사는 기록이 과장됐다고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논쟁은 코드 수만 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추가 진단에 맞는 검사·약물·관찰이 실제로 제공됐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분석에서 주목된 사례 중 하나는 큰 장 수술이다. 2023년 초부터 2025년 말 사이 일부 부수 질환의 기록 빈도가 크게 늘었다. 부분 장폐색이나 체내 산 수치 이상 같은 상태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태는 실제 환자 치료에서 중요할 수 있지만, 동시에 청구 등급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AI가 이전에 놓치던 상태를 발견한 것인지, 병원 수입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록을 밀어 올린 것인지가 쟁점이다.
환자는 왜 이 문제를 알아야 하나
병원과 보험사의 청구 분쟁은 멀게 느껴지지만 비용은 결국 환자에게 돌아올 수 있다. 보험사가 지급액 증가를 반영해 다음 해 보험료를 올리거나, 특정 수술과 입원에 대한 사전 승인을 더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내는 정률 부담금이 청구액에 연동된다면 같은 치료를 받고도 본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영향은 진료 기록 자체다. AI가 추천한 부수 질환이 의사의 충분한 확인 없이 차트에 남으면 이후 다른 병원이나 보험사가 그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증 질환 이력이 있는 것으로 분류돼 보험 심사나 치료 계획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의료 기록의 오류는 단순 오탈자보다 오래 간다. 여러 기관으로 복사되고 다음 진료의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AI가 실제 질환을 더 잘 찾아낸다면 환자에게 이익이다. 이전에는 바쁜 의료진이 놓쳤던 영양실조나 합병증 위험이 기록돼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해결책은 AI 기록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된 진단이 임상적으로 맞는지 사람이 확인하고 환자가 기록을 수정할 통로를 보장하는 데 있다.
병원과 보험사의 ‘AI 대 AI’ 경쟁
의료비 논쟁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병원만 AI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사도 청구서를 자동 검토하고 이상 패턴을 찾으며, 진료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데 AI를 도입하고 있다. 병원 AI가 빠진 진단을 찾아 청구액을 높이면 보험사 AI는 과도한 코드를 찾아 삭감하려 한다. 한쪽의 자동화가 다른 쪽의 자동화를 부르는 구조다.
겉으로는 행정 효율이 좋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이의 제기와 재심이 생길 수 있다. 병원은 AI가 추천한 항목을 청구하고, 보험사는 AI가 의심한 항목을 거절하며, 의료진과 환자는 그 사이에서 증빙을 다시 제출한다. 두 시스템이 서로의 판단을 방어하기 위해 더 긴 문서와 더 복잡한 규칙을 만들면 의료 행정 비용은 오히려 커진다.
환자에게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치료의 필요성보다 두 AI 시스템이 읽기 좋은 기록을 만드는 데 시간이 쓰이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설명하기보다 보험사의 자동 심사를 통과할 표현을 고르게 되고, 보험사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위험 점수로 거절할 수 있다. AI 도입의 목표가 진료 개선이 아니라 청구 경쟁의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바뀌지 않도록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AI 기록 도우미는 모두 같은가
이번 논쟁에서 여러 종류의 도구를 한데 묶어 ‘의료 AI’라고 부르면 오해가 생긴다. 진료 대화를 받아 적는 도구, 의사의 메모를 요약하는 도구, 질환 코드를 추천하는 도구, 보험금이 가장 많이 나오는 조합을 찾는 도구는 목적과 위험이 다르다.
대화 기록 도우미는 의사가 환자를 보며 키보드를 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대화에 없던 내용을 채워 넣거나 부정 표현을 놓치면 오류가 생긴다. 예를 들어 ‘흉통이 없다’를 ‘흉통’으로 기록하면 전혀 다른 진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드 추천 도구는 기록에 있는 정보를 보험 분류로 바꾸지만, 어떤 코드가 더 높은 보상을 받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병원의 재정적 이해와 맞물린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단순히 ‘AI를 사용했다’고 표시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어떤 단계에 AI가 개입했는지, 최종 진단과 코드에 누가 서명했는지, 추천을 얼마나 자주 거부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보험사 역시 자동 거절에 AI를 썼는지, 사람이 재검토할 수 있는지 알려야 한다. 투명성 기준이 양쪽에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기업 주장과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면
확인된 사실은 BCBSA가 자사 계열 보험사의 입원 청구 데이터를 분석해 2023년 대비 추가 비용을 계산했고, 부수 질환 코드와 치료 복잡도 증가를 관찰했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AI 기록·청구 도구가 확산된 것도 여러 보도와 업계 자료로 확인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은 추가 비용 가운데 정확히 얼마가 AI의 직접 결과인지다. BCBSA는 보험사를 대표하는 조직이므로 지급 비용 증가에 민감한 이해관계자다. 병원 측은 과거에 누락됐던 환자 상태를 더 정확히 기록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독립 연구자가 같은 자료와 방법으로 결과를 재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9억4200만달러를 환자의 손해액으로 그대로 보면 안 된다. 그 안에는 정당한 추가 치료비가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분석이 포착하지 못한 다른 보험사와 외래 진료 비용이 있을 수도 있다. 숫자는 문제의 방향과 규모를 보여주는 신호이지, 최종 판결문이 아니다.
실제로 달라져야 할 점
첫째, AI가 새로 추가한 진단은 의사가 별도로 확인했다는 표시가 필요하다. 단순히 시스템이 추천했다는 이유로 환자 차트와 청구서에 자동 반영돼서는 안 된다. 특히 청구 등급을 크게 바꾸는 부수 질환은 임상 근거를 남겨야 한다.
둘째, 환자가 자신의 의료 기록을 쉽게 보고 수정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만든 오류는 빠르게 복제되므로 퇴원 후 수개월이 지나 발견하는 것보다 청구 전에 확인하는 편이 낫다. 환자용 설명에는 전문 코드 대신 어떤 질환이 왜 추가됐는지를 쉬운 말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셋째, 보험사의 AI 거절에도 같은 수준의 설명 책임이 필요하다. 병원 AI의 과잉 청구만 문제 삼고 보험사 AI의 과잉 거절을 방치하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어떤 근거로 지급을 줄였는지, 사람이 다시 검토했는지, 환자가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공개돼야 한다.
앞으로 볼 변화
이번 분석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비용을 줄였는가’가 아니라 ‘절약된 행정 시간과 늘어난 청구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갔는가’다. 의사가 기록 시간을 줄여 환자와 더 오래 이야기했다면 분명한 이익이다. 그러나 병원과 보험사가 더 빠르게 돈을 주고받기 위해 AI를 경쟁적으로 사용하고 환자의 보험료와 대기 시간만 늘었다면 효율화라고 부르기 어렵다.
앞으로는 BCBSA 분석의 세부 방법과 병원 측 반론, 규제기관의 감사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추가 진단이 실제 치료 증가와 함께 나타났는지, AI가 추가한 코드의 오류율이 얼마인지가 핵심이다. 의료 AI의 성패는 문서를 얼마나 빨리 쓰는지가 아니라, 환자 기록을 더 정확하게 만들면서 비용과 치료 결과를 함께 개선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출처: Reuters 보도, PYMNTS 보도